인과는 내가 창조하는 것
금생에 지어서 결과를 금방 받는 업을 순현업이라 합니다.
착한 일을 해서 착한 과보를 받든지, 모진 마음을 먹어서 모진 결과를 당하든지 하는 것은 순현업이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금방 과보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 생에 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 생에 안 받고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업(順生業)이라고 하고
다음 생도 아니고 삼생 이후에 받는 업은 순후업(順後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 저렇게 착한 일을 하는데 복을 못 받는다. 저 사람, 저렇게 모진데도 호화스럽게 잘도 산다. 세상에 참 법도 없고
인과도 없고 신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보를 받는 것 가운데서 정업(定業)과 부정업(不定業)이 있어서, 금생에 받는 것,
혹은 내생에 받는 것, 혹은 그 다음 생에 받는 것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해지지 않아서
부정기적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셔서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이와 같이 지은 결과가 지워지지 아니하고 결과로 나타납니다.
씨를 뿌리면 씨가 곧 싹이 나서 그대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 그대로 말라 없어지진 않습니다.
“참회를 하고 다른 착한 행을 해서 지우기 전에는 업을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면 이 몸, 이 세계,
이 시대를 받는 것, 형제나 이웃을 함께 만난 것, 친구와 만나 사업을 해서 이렇게 잘 되었다든가 못 되었다 하는 모두가 전생에 지었던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생에 내가 누구냐? 박씨냐, 김씨냐?
알 수 없는 어느 전생, 어떤 사람이 지어서 나에게 짐을 물려주고 나는 알지도 못하던 짐을 지고 가면서 고생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떻게 되었든지 누가 지은 결과를 지금 받든지간에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름이 바뀌고 형태가 바뀌고 주소가 다르고 위치가 다르고 한 생은 남자가 되고 그 다음 생은 부인이 되어서 똑같은 상태를 뒤집어서 주고받는
보상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겉모양은 달라도 그것은 같은 동일인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원인에 대해서 결과가 필연적으로 따른다고 하는 인과 이야기를 숙명론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결과든지 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원인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인을 짓고 새롭게 창조적인 원인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인은 그렇기 때문에 과라고 하는 숙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같이 보여도 끊임없이 새롭게 인을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자기와 자기 환경과 자기의 역사와 자기의 국토를 바꿀 수 있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인과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인을 설정하는 근본적인 권능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것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아름답게 될 것이냐, 아니면 고통스럽게 될 것이냐, 평화스럽게 될 것이냐, 아니면 외롭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 모두는 남이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것은 과거에, 지금의 것은 새롭게 내가 짓습니다.
나는 과거 여하에 불구하고 오늘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어두운 생활을 얼마나 반복해 왔는지 몰라도 금생에서는 횃불을 만나서 밝은 횃불을 높이 들고 나아갈 때 어둠은 사라지고
새로운 밝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과론은 말하자면 결과중심주의가 아니라, 끊임없는 창조를 의미하고 창조적인 권능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져 있어서 지금 새롭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미래를 원만하게 만드는 권능이 있다고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셔서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숙인금과(宿因今果)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어서 인(因) 때문에 과(果)를 받게 되는 것이니 과는 그 인과 같게 마련이다.
이에 똑똑히 마음에 새겨 여러 의심을 제거해야 한다.
선악의 업보란 거짓이 없으며 그 형세가 사나운 물살 같아 멈추지 못한다.
업력 때문에 보를 각기 불러들이는 것이니 복인(福因)을 스스로 지으면 낙과(樂果)를 받게 된다.
백 천 겁을 지내도 업은 파괴되지 않아서 인연이 결합하는 때가되면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되느니라.”
『정행소집경』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남이 준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을 지음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습니다.
ㅡ아미타불ㅡ
인과는 내가 창조하는 것
금생에 지어서 결과를 금방 받는 업을 순현업이라 합니다.
착한 일을 해서 착한 과보를 받든지, 모진 마음을 먹어서 모진 결과를 당하든지 하는 것은 순현업이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금방 과보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 생에 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 생에 안 받고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업(順生業)이라고 하고
다음 생도 아니고 삼생 이후에 받는 업은 순후업(順後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 저렇게 착한 일을 하는데 복을 못 받는다. 저 사람, 저렇게 모진데도 호화스럽게 잘도 산다. 세상에 참 법도 없고
인과도 없고 신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보를 받는 것 가운데서 정업(定業)과 부정업(不定業)이 있어서, 금생에 받는 것,
혹은 내생에 받는 것, 혹은 그 다음 생에 받는 것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해지지 않아서
부정기적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셔서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이와 같이 지은 결과가 지워지지 아니하고 결과로 나타납니다.
씨를 뿌리면 씨가 곧 싹이 나서 그대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 그대로 말라 없어지진 않습니다.
“참회를 하고 다른 착한 행을 해서 지우기 전에는 업을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면 이 몸, 이 세계,
이 시대를 받는 것, 형제나 이웃을 함께 만난 것, 친구와 만나 사업을 해서 이렇게 잘 되었다든가 못 되었다 하는 모두가 전생에 지었던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생에 내가 누구냐? 박씨냐, 김씨냐?
알 수 없는 어느 전생, 어떤 사람이 지어서 나에게 짐을 물려주고 나는 알지도 못하던 짐을 지고 가면서 고생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어떻게 되었든지 누가 지은 결과를 지금 받든지간에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름이 바뀌고 형태가 바뀌고 주소가 다르고 위치가 다르고 한 생은 남자가 되고 그 다음 생은 부인이 되어서 똑같은 상태를 뒤집어서 주고받는
보상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겉모양은 달라도 그것은 같은 동일인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원인에 대해서 결과가 필연적으로 따른다고 하는 인과 이야기를 숙명론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결과든지 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원인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인을 짓고 새롭게 창조적인 원인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인은 그렇기 때문에 과라고 하는 숙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같이 보여도 끊임없이 새롭게 인을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자기와 자기 환경과 자기의 역사와 자기의 국토를 바꿀 수 있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인과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인을 설정하는 근본적인 권능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것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아름답게 될 것이냐, 아니면 고통스럽게 될 것이냐, 평화스럽게 될 것이냐, 아니면 외롭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 모두는 남이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것은 과거에, 지금의 것은 새롭게 내가 짓습니다.
나는 과거 여하에 불구하고 오늘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어두운 생활을 얼마나 반복해 왔는지 몰라도 금생에서는 횃불을 만나서 밝은 횃불을 높이 들고 나아갈 때 어둠은 사라지고
새로운 밝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과론은 말하자면 결과중심주의가 아니라, 끊임없는 창조를 의미하고 창조적인 권능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져 있어서 지금 새롭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미래를 원만하게 만드는 권능이 있다고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셔서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숙인금과(宿因今果)가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어서 인(因) 때문에 과(果)를 받게 되는 것이니 과는 그 인과 같게 마련이다.
이에 똑똑히 마음에 새겨 여러 의심을 제거해야 한다.
선악의 업보란 거짓이 없으며 그 형세가 사나운 물살 같아 멈추지 못한다.
업력 때문에 보를 각기 불러들이는 것이니 복인(福因)을 스스로 지으면 낙과(樂果)를 받게 된다.
백 천 겁을 지내도 업은 파괴되지 않아서 인연이 결합하는 때가되면 과보를 반드시 받게 되느니라.”
『정행소집경』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남이 준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을 지음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습니다.
ㅡ아미타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