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性偈는 의상조사께서 지으신 삼십구의 게송입니다.
이 게송은 법성도라는 하나의 도인(圖印)과 함께 화엄경의 내용을 가장 간명하고 직절 하게 표현한 노래입니다.
법성(法性)이란!
항상 변하지 않는 법의 체성을 말합니다.
법(法)이란 범어 Dharma 팔리어로는 Dhmnma인데 음역하여 달마라고 합니다.
제성품을 가졌고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입니다.
곧 자신의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는 나무로서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서의 체성을 가지고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며 궤범이 되어서 다른 것에 일정한 구분을 내게 하는 규칙으로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
등 입니다.
이 법에 의지해서 물질이나 정신의 일체 만유는 모두 이 뜻을 가졌으므로 일체제법(一切諸法) 만법(萬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법을 분류 하여 75법 100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반야심경 등의 육근(六根)·육식(六識) 등에서의 법.또는 법경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법경은 정신이나 물질의 대경(對境)이 되는 부분을 통틀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또 불법·정법·교법 등으로 불리는 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칭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계법이라 하여 스님이나 신도들이 지켜야 할 일상의 행동의 위의에 관한 부분을 가리키는 규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법경(法境)이라고 말할 때는 육경(六境)의 하나로서 제 육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구사종에서는 46심소(心所)와 14불상응법 3종의 무위법과 무표색의 64법을 말하 기도 하고 유식종에서는 널리 일체 만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性)이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질·성품·기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물은 그 자체나 본체에 현상적으로 차별이 되는 상대적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온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거나 또는 평등한 진여(眞如)를 말하기도 합니다.
본래부터 으레이 고쳐지지 않는 성질로서
금의 성질.화의 성질.물의 성질.목의 성질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법(法)과 성(性)을 함께 붙여서 법성(法性)이라 하고 범어로는 Dharmata라고 하며 진여(眞如).실상(實相) 법계(法界) 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법성게는 항상 변하지 않는 만유 실상의 법다운 자체의 본성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법성게를 지은 의상스님은 신라시대의 스님으로 서기 625년에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고 29세에 황복사로 출가하였습니다.
당나라의 불교가 성함을 듣고 서기 650년 원효와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뒤에 다시 당항포에서 중국에 갈 뱃길을 기다리던 중 원효는 무덤 속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일체유심의 도리를 깨달아서 당나라에 가는 것은 마음을 깨닫기 위함인데 구태여 다시 갈 필요가 없다 하고 되돌아 오고 말았는데 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처음 양주에 있다가 662년에 종남산 지상사 지엄 (智嚴)에게서 현수(홈首)와 함께 화엄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신라의 사신 김홈순을 당나라에서 가두고 신라를 치려고 하므로 스님이 670년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실을 보고하니 왕이 그때 명량법사를 청하여 기원하고 무사하였습니다.
문무왕 16년(676년)에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뒤에 현수가 화엄수현기를 짓고 그 부본을 의상조사에게 보내면서 감정해 주기를 청했던 편지가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의상조사는 화엄종의 십찰을 짓고 화엄경을 널리 전하고자 했습니다.
태백산의 부석사를 비롯해서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비슬산 옥천사.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등을 지어서 화엄경의 종취를 드날렸습니다.
화엄경에서의 깨달음은 법성이며 법계며 진여(眞如)인데 부처님을 믿는 이는 수행하는 데 계를 지킬 것이니 계를 지킴으로 해서 모든 공덕이 갖추어 집니다.
계는 능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근본이며
배움은 공덕을 닦는 대지가 됩니다.
‘계와 배움에 언제나 수순하여 행하면 이것이 곧 일체 여래께서 칭찬하는 바이다’ 라고 했습니다.
의상스님이 중국에서는 선묘(善妙)와의 설화가 있고 또 신라에 돌아와서는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하고자
할 때에도 ‘비록 위에서부터 믿음을 가지고 청정하게 살면 막대기로 선을 그어도 백성들은 엄하게 여겨서 함부로 건너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月刊 海印에서 拔萃
法性偈는 의상조사께서 지으신 삼십구의 게송입니다.
이 게송은 법성도라는 하나의 도인(圖印)과 함께 화엄경의 내용을 가장 간명하고 직절 하게 표현한 노래입니다.
법성(法性)이란!
항상 변하지 않는 법의 체성을 말합니다.
법(法)이란 범어 Dharma 팔리어로는 Dhmnma인데 음역하여 달마라고 합니다.
제성품을 가졌고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입니다.
곧 자신의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는 나무로서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서의 체성을 가지고 변하지 않고 전해지는 것이며 궤범이 되어서 다른 것에 일정한 구분을 내게 하는 규칙으로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
등 입니다.
이 법에 의지해서 물질이나 정신의 일체 만유는 모두 이 뜻을 가졌으므로 일체제법(一切諸法) 만법(萬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법을 분류 하여 75법 100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반야심경 등의 육근(六根)·육식(六識) 등에서의 법.또는 법경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법경은 정신이나 물질의 대경(對境)이 되는 부분을 통틀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또 불법·정법·교법 등으로 불리는 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칭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계법이라 하여 스님이나 신도들이 지켜야 할 일상의 행동의 위의에 관한 부분을 가리키는 규정을 말하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법경(法境)이라고 말할 때는 육경(六境)의 하나로서 제 육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구사종에서는 46심소(心所)와 14불상응법 3종의 무위법과 무표색의 64법을 말하 기도 하고 유식종에서는 널리 일체 만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性)이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질·성품·기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물은 그 자체나 본체에 현상적으로 차별이 되는 상대적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온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거나 또는 평등한 진여(眞如)를 말하기도 합니다.
본래부터 으레이 고쳐지지 않는 성질로서
금의 성질.화의 성질.물의 성질.목의 성질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법(法)과 성(性)을 함께 붙여서 법성(法性)이라 하고 범어로는 Dharmata라고 하며 진여(眞如).실상(實相) 법계(法界) 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법성게는 항상 변하지 않는 만유 실상의 법다운 자체의 본성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법성게를 지은 의상스님은 신라시대의 스님으로 서기 625년에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고 29세에 황복사로 출가하였습니다.
당나라의 불교가 성함을 듣고 서기 650년 원효와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뒤에 다시 당항포에서 중국에 갈 뱃길을 기다리던 중 원효는 무덤 속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일체유심의 도리를 깨달아서 당나라에 가는 것은 마음을 깨닫기 위함인데 구태여 다시 갈 필요가 없다 하고 되돌아 오고 말았는데 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처음 양주에 있다가 662년에 종남산 지상사 지엄 (智嚴)에게서 현수(홈首)와 함께 화엄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신라의 사신 김홈순을 당나라에서 가두고 신라를 치려고 하므로 스님이 670년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실을 보고하니 왕이 그때 명량법사를 청하여 기원하고 무사하였습니다.
문무왕 16년(676년)에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뒤에 현수가 화엄수현기를 짓고 그 부본을 의상조사에게 보내면서 감정해 주기를 청했던 편지가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의상조사는 화엄종의 십찰을 짓고 화엄경을 널리 전하고자 했습니다.
태백산의 부석사를 비롯해서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비슬산 옥천사.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등을 지어서 화엄경의 종취를 드날렸습니다.
화엄경에서의 깨달음은 법성이며 법계며 진여(眞如)인데 부처님을 믿는 이는 수행하는 데 계를 지킬 것이니 계를 지킴으로 해서 모든 공덕이 갖추어 집니다.
계는 능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근본이며
배움은 공덕을 닦는 대지가 됩니다.
‘계와 배움에 언제나 수순하여 행하면 이것이 곧 일체 여래께서 칭찬하는 바이다’ 라고 했습니다.
의상스님이 중국에서는 선묘(善妙)와의 설화가 있고 또 신라에 돌아와서는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하고자
할 때에도 ‘비록 위에서부터 믿음을 가지고 청정하게 살면 막대기로 선을 그어도 백성들은 엄하게 여겨서 함부로 건너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月刊 海印에서 拔萃